퇴사일기

인스타그램 언팔로우하기.

like아이린 2021. 7. 29. 06:37

호텔에서 일하다가 운좋게 명품브랜드 회사로 이직해서 세전 차이가 1000유로 가까이 차이나는 월급을 받게 되었다. 세후로는 한 400유로 차이 나나?...나머진 다 세금..^^..  월급 세후가 말이 400유로이지, 연중에 보너스까지 합치면 연봉으로는 비교도 안되는 많은 돈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호텔에서 일할 때나 지금이나 통장에 쌓이는 돈은 큰 차이가 없다. 호텔에서 일할 때도 스트레스는 많이 받았지만 적게 벌어서 그런가 적게 쓴거 같고, 지금 회사에선 스트레스를 더 받고 돈을 더 많이 받으니 더 많이 쓴다. 그때나 지금이나 쌓이는 돈은 없지만, 생각해보면 그래도 호텔에서 일할 땐 나름 몇푼이라도 모으려고 했던 것 같다. 이직할때 1년짜리 수료증받는 코스를 들었는데 첫 6개월 학비 3000유로는 호텔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으로 지불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 받으면서 그만큼 모았으면 됐지 싶다.

 

요즘 심리학 관련 영상을 자주본다. 심리학 영상을 다 본다기보다 싸이코패스, 연애관련 등등은 별로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나에게 관련 있는 영상을 보는데 그 중에서도 곽정은님 영상부터 양브로 영상까지 보고싶은 주제를 위주로 골라보고 있다. 또 그와 맞물려서 최근 돈 영상을 많이 보는데, 난 어차피 돈이 없으니... 투자 영상은 좀 의미가 없고.. 대신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 수 있는지, N잡러 관련이나 종잣돈 모으는 영상을 보는데 그 중에서도 신아로미님이 다른 분들이랑 만든 누워서 돈벌기였나? 그런 걸보는데 심리학 영상+돈벌기 영상의 콤비가 최근의 내 상태를 돌아보게 하고 깨닫게 해주면서 당장 내가 할 일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쉽진 않겠지만..

 

먼저 공허한 마음에서 하는 쇼핑이다. 

처음에 유튜버들이 이전에 급소비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그들이 말하는 소비란 자기가 좋아하는 물건들을 미친듯이 사들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화장품, 립스틱을 몇백개씩 가지고 있다던지, 블러쉬가 몇백개 등등이었고, 이런 얘기들이었는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난 화장도 안하고, 술도 거의 안마시고, 담배도 안피우고 그런데!!!왜 돈이 없는 것이냐. 난 패피가 아닌데 옷을 그렇게 산다. 뭐 그래도 정말 미친듯이 사재끼는 사람들에 비하면 양반이기도 하고 얼마전까지만해도 보라끌레르 유튜브보면서 그분이 자라 쇼핑하면 같이 사재끼곤 했으나, 부질없음을 깨닫고, 자라는 자라일 뿐이라는 것도 깨닫고, 이젠 자라나 H&M이 아닌 조금 더 비싸고 퀄리티 좋은 브랜드들에 눈이 돌아가 2-3개사면 몇백유로가 훌쩍 나가는 제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가짓수는 훨씬 적을지 모르겠으나 가격이... 

 

내가 명품매장에서 일하게 된 후 더 큰 영향이 있는 것 같다. 매장에서 가방들이 뭐 제일 싼게 100만원이고, 100만원짜리 가방사면서 상담을 1시간-2시간씩 받으면 다들 조금씩 불만족하는데 (셀러들이 많이 못팔아서 ㅋㅋ) 그것도 이해가 가면서도 사실 일반인으로써 100만원짜리 명품가방을 사면 그만큼 고민하는게 당연한건데 란 생각도 들게 된다. 어쨌든 내가 봤을때 그래도 2000-3000유로는 줘야 꽤 괜찮은 가방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참 내가 루이비통의 회장 딸도 아닌데 아....정말 내가 미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원할인 받을 수 있음에도 가방을 구매하지 않은건 정말 잘 한것 같다. 내가 여기서 산 물건은 엄마 가방, 엄마아빠 지갑, 동생 동전카드지갑, 내꺼는 다이어리 정도이다. 적지는 않지만 뭐 선물이니 어떠냐 싶기도 하다. 루이비통에서 일하니, 가방 하나쯤은 사는 것이 당연한 느낌이 되어버린 지금이 무서운 것 같다. 1000유로도 가장 싼 가방이다보니, 조금 더 저렴한 타 브랜드의 300-400유로짜리 가방 하나 사는 것에 눈 깜박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큰 돈이 큰 돈이 아닌 것 같은 착각 속에 헤엄치는 기분이다. 그러한 이유로다가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바로 '인스타그램 언팔로우'. '우리집'이 생기고 나서 인테리어 소품에 관심이 부쩍. 주방용품에도 흘깃흘깃. 정신차리고 보니 패션 브랜드 인스타는 물론 인테리어 브랜드를 수십개씩 팔로우 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내 피드도 예쁜 인테리어 소품들, 옷들 사진이 가득가득... 정말 위험하다. 인스타의 쇼핑기능이 점점 강화되면서도 나도 모르게 쓱쓱 보다가 홀린듯 들어가서 장바구니에 줍줍.. 망설임없이 결제하는 날 발견한다. 돈이 200-300유로가 되면 헉.. 하다가도 '일단 받아보고 왠만하면 반송해야지'라고 하고 일단 받고 본다. 그런데 막상 받고보면 맘에 들기도 하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언젠가 입겠지 하는 생각으로 결국 반송하지 않고 보관하게 된다. 정말 물건을 고르고 지불하기 까지 그 과정이 어찌나 빠르고 간단한지 감탄이 나오면서도 무섭기까지 하다. 처음엔 피드를 쭉쭉 내리면서 각종 쇼핑 웹사이트 인스타를 언팔하고 그 다음엔 내가 팔로우 하는 리스트를 보면서 굳이 쇼핑웹사이트가 아니어도 어쨌든 결제로 이어질 수 있는 계정들은 모두 언팔해버렸다. 결국 남는 건 지인들 계정과 자기개발 계정 정도인 것 같다. 그래도 뭔가 언팔하고 나니 속이 시원해졌다. 

 

가끔 우리집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답답할 때가 있다. 뭔가 이것저것 물건들이 너무 많다. 난 미니멀리스트! 라고 까진 굳이 하고 싶지 않고 필요한건 사쓰자 주의지만, 20대때, 그리고 여기에 왔을 그 시점까지만 해도 일반적으로 큰 사이즈 여행가방 하나만 들고 이 나라 저 나라 옮겨다니던 때가 있었다. 물론 그때도 물건들을 안사고 살았던 건 아니지만 1-2년마다 한번씩 주기적으로 물건을 버리는 때가 있었고, 난 그 물건들에 큰 미련도 없었으며 정말 중요한 것들만 들처매고 다녔던 나였다. 지금도 어쩌다보니 맥시멀리스트로 살고 있지만, 장기여행을 간다고 하면 배낭하나 7키로로 기내용 사이즈에 맞춰갈 수 있는 사람이 난데 비움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으니 그게 답답한 것으로 다가온 것 같다. 결혼 전/후가 다르고 삶의 형태도 다르지만 중요한 물건 외엔 다시 모두 털어버리고 싶다. 이 물건들이 나에게 들러붙어 옥죄는 느낌이 드니 더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껴지는 것 같다. 

 

인스타 언팔도 했고, 일도 곧 그만두면 훨씬 시원해질 것 같다.